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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유학체험수기, 그 두번째 이야기

道法 2016. 12. 31. 10:47

올해 시월… SNS에 도일 10주년이라는 동기들의 글이 올라왔다. 그렇다 참 빠르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나는 지금 한국에 있다. 일본에서 8년 6개월간 유학생활을 했으며, 귀국한지 1년8개월 정도 되었다.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으로 회사 생활 중 인 내게 유학체험수기로 글을 쓸 기회가 다시 찾아 왔다. 나는 집필여부에 관해 머뭇거렸다. 사실 유학체험수기를 쓰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6년전 이맘때 쯤 유학체험수기를 써보면 어떻냐는 권유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도쿠시마대학에서 우수한 성적과 함께 학과 최초로 3년 조기졸업을 하게 되었고, 문부과학성 장학금과 함께 도쿄대학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남 보기에도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흔쾌히 유학체험수기를 쓸 수 있었다(주석1). 헌데, 지금은 흔쾌히 쓸 상황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머뭇거렸다. 병역문제를 안고 있는 나와 같은 학생들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병역문제로 귀국을 하게 된 나는 그때도 지금도 또 다시 추후의 진로로 인해 다소 혼란스럽다. 머릿속에서 추후의 계획들이 명확히 정리는 되지 않고, 글쓰기를 기회 삼아 과거를 돌이켜보며 생각을 정리 하고, 내 경험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학체험수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성공적으로 학부생활을 마치고 도쿄로 상경했다. 도쿄는 정말 매력적은 도시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밖에서 조깅하기에 껄끄러운 서울에 비하면 같은 대도시임에도 공기가 좋고, 일본 각 지방의 맛있는 음식과 젊은 세대층의 사람이 많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참 좋은 곳에서 살았었구나’ 하고 조금 더 그 당시 환경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어야 했다. 도쿄라는 도시뿐만이 아니라, 유학에 가장 중요한 도쿄대학교는 매우 우수한 연구시설을 갖추었고, 우수한 학생들,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내공이 깊으신 교수님들 등 그 당시에는 당연한줄 알고 누려온 혜택들이 사회에 나와 보니 매우 완벽하고 다시 누리기 힘든 풍족한 환경들이였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풍족한 환경 속에서 나는 나의 석사생활 또한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앞서 말했듯이 도쿄대학교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후배들까지 이런 똑똑한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근면성실하게 부족한 지식을 습득하며 끈기있게 연구를 해나야 한다. 그런데 석사 학생으로서 교수님이 주신 과제를 본격적으로 처음 연구하는 입장으로써 순탄할 리가 없다. 연구는 난항이였다. 최종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한 번 한 번 해야 할 실험의 양이 무척 많았다. 석사초기에는 반도체 결정 성장이라는 실험을 하였는데, 아침 일찍 6시쯤 연구실에서 실험을 준비하고 시작하여 밤10시에 끝나는 적도 꾀 있었다. 헌데 실험장비가 매우 중요하여 하루 종일 장비를 지키고 실험을 진행해야 하니 점심, 저녁 도시락을 사다 놓고 실험하며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실험을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지언정 결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기에 뿌듯하지 결코 힘들지 않았다. 힘든 것은 뜻하지 않게 최종 결과가 잘 얻어지지 않고 실패하는 경우다. 특히 도중에 실수로 인해 공들여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는 참 답답하다. 이렇게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실패를 축적하며 조금씩 결과가 나올 것 같은 희망이 보일 때 쯤 석사과정이 끝나갔다. 마저 얻고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만 남긴 채 석사과정에서의 연구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그렇게 참석한 석사 졸업식 때의 일이다. 동기들 중 몇몇은 연구실적을 인정받아 논문상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받을 수 없었다. 항상 최고를 꿈꿔 오던 나는 그때 많은 생각을 하였다. 도쿠시마대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조기졸업을 하고 도쿄대학교로 온 나는 결국 다른 학생들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서 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고, 때마침 3.11 동북대지진과 함께 박사과정 진학에 관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석사과정 후반에 보인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에 직감적으로 조금만 더 하면 해낼 수 있을 것 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고, 어릴적 부터 부모님으로 부터 뭐든가 시작을 하면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게끔 배워서 인지 끝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졸업 때 받지 못한 도쿄대 상장을 박사졸업 할 때는 꼭 받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하고 그렇게 다시 연구에 임했다. 박사과정에서의 연구는 석사과정에 비하면 꽤 순탄하게 이어졌다.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은 운이 좋게도 맞아 떨어져 실험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었다. 퍼즐의 가장 큰 부분을 맞추고 나면 나머지 작은 부분들은 자연스레 맞아가듯 연이어 좋은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운이 좋아서 얻은 결과도 있지만, 석사과정에서 수도 없이 실패를 해온 경험들이 축적되어 알게 모르게 나만의 노하우로써 박사연구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석사과정의 실패 없이는 박사과정의 성공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떳떳이 내 5년간의 석박사 대학원 생활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럽게 학위과정을 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렇게 학부과정에 이어 다시 한 번 성공의 성취감을 느끼고, 나만의 성공스토리를 하나 더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박사과정 진학 시 목표로 생각했던 도쿄대에서의 상장을 박사학위 졸업식 때 학우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 수여받을 수 있는 영광을 맛보았다. 사실 상장은 연구자에게 있어 부수적인 것이고, 박사과정에서의 나의 경험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값지다 할 수 있다. 이런 값진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신 지도교수님 두 분의 가르침과 선후배와 동기들의 도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며 나는 내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졸업여행을 선물하였다. 학사과정을 마치고 부랴부랴 동경으로 상경하는 탓에, 그리고 석사과정 때는 지진으로 인해 정신없이 한국으로 피난을 가는 탓에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게 있어 졸업여행은 로망이였다. 어디를 갈까 고민중에 나는 내 유학생활의 시작이였던 도쿠시마를 찾기로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도쿠시마를 떠나는 야간버스 안에서 꼭 도쿄대에서도 잘하고 일본유학을 마치기 전에 꼭 한번 돌아와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다시 찾은 도쿠시마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도일 초기에 밥먹을 친구가 없어 항상 혼자서 찾았던 우동집… 맛도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맛있고 친절하다. 학교를 찾아가니 5년이 지났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날 기억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덕분에 도쿄에서도 유학생활을 잘 마칠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도쿠시마 그리고 카가와를 거쳐 호주로 떠났다. 3주간 호주에서 지난 일본유학생활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으며 휴식을 취하고, 귀국 후의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호주에서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잠시 도쿄를 거쳐 드디어 한국으로 귀국하며 유학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항상 머릿속에 상상했었던 금의환향 후의 큰절,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니, 가슴이 뭉클했다. 긴 시간 동안 일본에 혼자 둔 아들 녀석을 한시도 빠짐없이 걱정해주시고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회는 생각했던 것 보다 냉혹하다. 특히나 병역 문제를 안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 사기업 연구소에서 병역특례 중인데 사실 사기업이 아닌 정부출연연구소로 병역특례를 구해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이끌어가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회사로 신분이 바뀌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문화가 바뀌니 환경의 온도차에 적응하는데 고충이 많았다. 물론 현역이 아니라 병역특례로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는 특혜를 보고 있는 점에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로서의 꿈을 갖고 있는 내게 지금 현실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3년간은 참아야 한다. 이렇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 왔다. 이번 시련은 어찌해도 3년간은 꼭 붙어있는 녀석이다.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내 인생에 시련은 다시금 찾아오고 이 녀석처럼 가끔씩은 오래 붙어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련을 극복하는데 있어 힘들어 하면 안 된다.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시련조차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그 자세는 이 또한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고, 자신감은 결국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본인이 얼마나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또한 시련에 대해 여유로운 자세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떳떳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다음 수기의 집필이기다려진다. 미리 내용을 상상해 보며 앞으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사는 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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