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쓰월드
2016.11.13. 유학 수기 (2010년 10월에 쓴 글) 본문
하기의 글은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1년차에 유학 수기를 부탁 받아 2010년 10월에 쓴 글이다. 나름 알차게 보낸 대학생활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박사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지금 다시 한번 유학 생활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한번더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중에 먼저 오래된 글을 끄집어 냈다.
유학수기
일년 전 이맘때였을까? 일본공과대학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했을 때만큼이나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동경대학교 대학원의 입학허가증과 일본 문부성의 국비장학생 합격 통지였다. 일본 최고의 학교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는 동경대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여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오기까지 행운만이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항상 어렵고 힘겨운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뎌야 만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한발 한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의 성취감”이라는 동력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 온 지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지난 4년간 나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묻곤 한다.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스무살 처음 일본에 왔던 때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스무살에 처음 도일했을 때 한국에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에게는 가능한 한 빨리 졸업해서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온 내가 도쿠시마라는 섬마을 시골 도시에 와서 여자친구에게 전화 한 통을 걸기 위해 국제전화가 되는 공중전화를 찾아 헤맸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마음을 나눌 한국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웠고, 밤이 되면 정말 깜깜한 도시가 되어버리는 도쿠시마에서, 나는 국비장학생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우쭐한 마음과 동시에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우쭐한 마음에 바보같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냥 빨리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는 인연이지 뭐! 하는 생각뿐이었다.
입학 후에도 굳이 내가 2살이나 어린 일본 학생들과 애써 친구가 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그들이 나에게 다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나의 어리석은 생각들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유학 초반에는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았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혼자서 인터넷을 하고 한국의 친구와 전화를 하는 외톨이 생활을 했다. 항상 혼자였고, 돌이켜보면 나는 “히키코모리” 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항상 주변에 친구가 많았던 내가 일본에 온 후 6개월간 혼자 지내다보니, 외로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외로움이 무엇보다 무섭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달아가면서 나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일본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숙제를 미리 준비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양국의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도 하며,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시도했다. 나의 변화는 일본 친구들에게도 마음으로 전달되었고, “나카마”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은 외로운 유학생인 나를 위해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기도 하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나를 초대해 주기도 했다. 학부과정 동안 노력해서 이루어 낸 성적표만큼이나 친구들과 쌓아 올린 우정 역시 내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을 잘 극복하고 일본 학우들과 즐겁게 대학 생활을 즐기면서도 나는 학업적으로도 알차게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빨리 졸업해서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찼던 내가 이제는 오히려 수석으로 학업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성적관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한가지 노하우를 꼽자면 바로 교수님과 친해지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교수님 방에 가서 질문하기!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 주변에는 항상 많은 학생들이 있으니 그 중에서 내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선생님의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어요! 저는 외국어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지만, 굴하지 않고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처음 교수님께 질문을 하러 갔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교수님의 방에 들어가 “先生、先生の授業に一つおうたがいしたいことがあります。”라고 질문을 해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본어 실수이다. うかがう(묻다)라는 동사를 써야 하는데 실수로うたがう(의심하다)라는 동사를 써버려서, “선생님, 선생님 수업에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 당시 선생님의 놀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웃음으로 제자의 실수를 너그러이 넘겨 주셨고 다음부터는 교수님을 대하는 것이 더욱 편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공대 시험이 끝나고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는 수험생이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학부3학년1학기가 끝나고 성적 최우수 학생으로 조기졸업 대상자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동경대학교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으로 돌아왔다. 도쿠시마의 뜨거운 여름 그리고 생각보다 어려운 시험 문제에 나는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떨어지면 어쩌지…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두려움도 생겼다. 사실 동경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장학금 문제 때문에 굳이 조기졸업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 항상 힘이 되어주신 미국인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가끔씩 선생님께 힘든 일들과 불안한 마음을 털어 놓곤 했는데, 어느날 선생님께서는 미국의 한 경제학자, George Shultz의 명언을 말씀해 주셨다. “The minute you start talking about what you're going to do if you lose, you have lost.” (앞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 이미 나는 진 것이다.) 나는 이 명언에 크게 2가지 의미를 두고 있다. 모든 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 바로 긍정의 힘이다. 그리고 내가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일은 점점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이 명언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이처럼 여러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항상 지켜봐 주시고 믿어주신 가족 덕분에 나는 도쿠시마 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에서는 최초로 4년 학부과정을 3년에 조기졸업 했고, 문부성 장학금과 함께 동경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루어 냈을 때의 쾌감, 그 성공의 성취감, 뇌리에 강하게 새겨진 기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지난 4월부터 동경에 와서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4년 전 처음 일본에 왔을 때처럼 더 이상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도 우쭐대지도 않으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하나 하나 성취해 나가는 그 쾌감을 여기 동경대학에서도 맛보고 싶다. 그렇기에 오늘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 가고 있다. 평가는 상대방의 기준, 최선은 나의 선택, 그리고 결과는 신의 뜻이라고 하지 않는가. 일본에 있는 많은 유학생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좋지 않은 환경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게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는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밝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도쿠시마대학, 내 대학생활에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그렇기에 추억을 되삼으며 2015.2월 박사학위 디펜스를 마치고 귀국전에 모교(학부)를 찾았다. 그 때 찍은 몇몇 사진들이다.
도쿠시마 대학 출신 나카무라 슈지 교수의 노벨상 수상 축하
파란색 LED 연구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도쿠시마는 아와오도리라고 하는 축제로 유명하며, 축제때 추는 춤을 아와오도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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